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동네마다 공터가 있었고,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고, 언제부터 내려오는지 모를 오래된 놀이와 노래가 있었다. 그 공터가, 공유할 수 있는 물리적 땅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지금의 서울 한복판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모인 한 명의 기획자와 다섯 명의 작가들에 의해 다시 구축되려 한다. 작가들은 고무줄에 다리 하나씩 걸어 미묘한 공유지대를 확보하고, 작업을 통해 현실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모인 작업들이 만들어낼 울림과 부딪힘을 목격하면서, 잃어버린 각자의 공터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Drawing 54 — 55.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의는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에서 펼쳐질 공동전시(9.14-9.30) 와 작가들이 진행하는 개별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진행될 예정이다. 레지던시 과정은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과 이태원동에서 엿볼 수 있다.

_강혜민 (테이크아웃드로잉&뮤지엄)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라는 놀이의 노래가 그렇 듯, 이번 레지던시에서는 의미와 목적성이 뒤로 물러나고, 저마다의 행위와 생각들이 병렬적으로 이어 붙여진다. 이러한 기획의 방식은 우리를 둘러싼 현재를 서술하기를 내려 놓고 거꾸로 불러들이는 기예를 찾기 위함이다. 레지던시 기간 동안, 작가들 상호간의 관계망을 그려가며 작가들이 이끌어가는 작업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이미지로 그려가는 작업을 에이노트의 방식으로 선택하여 진행하려 한다. 이는 레지던시 전체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지도의 형태로 만들어지며,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공간의 빈벽에 계속해서 설치된다.

_김윤익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

일시ㅣ2015년 9월 14일-9월 30일
오프닝ㅣ9월 14일 오후 6시
장소ㅣ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층계 및 복도
기획ㅣ김윤익
​참여ㅣ김범종, 김익현, 심혜린, 엄유정, 최빛나
​사진ㅣ김익현
​포스터ㅣ리사익 Leesaik

*프로그램

최빛나_연산적 구식화와 주술적 노래

9월 6일 (일) 오후 4시-6시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옥상

김익현_선비의 길:이승의 다리를 건너서

​9월 17일 (목) 오후 8시-10시

9월 29일 (화) 오후 8시-10시

사직공원,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3층

엄유정_상영회:어디에도 없이, 색, 풍경, 사람들

9월 18일 (금) 오후 8시-10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3층

심혜린_낭독회:몸을 바꾸는 낮과 밤

9월 21일 (월) 오후 8시-9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옥상

김범종_길고 잘못된 것 Long, Wrong

9월 25일 (금) 오후 5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옥상

아프리카 사람들은 마음씨가 좋아! 좋아! 케잌도 주고
케익먹고 배탈나서 병원에가니 호박같은 간호원이 나를 반기네
싱! 싱! 싱글러브유 오! 오! 오이맛사지

이런 노래가 있었다. 어릴 적 공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무줄놀이하며 부르던 노래인데 아주 쉽고 경쾌한 리듬의 노랫말이 이상한 훅 송이었다. 황당할 정도로 앞뒤의 개연성이 없는 이 노래를 지금 읆어보니 궁금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놀이의 노래들은 매우 다양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에서 신파, 동요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다양했다. 특히 ‘싱글러브유 오이맛사지’는 너무 이상해서 변태스럽기까지 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마음씨가 좋아서 케이크를 그냥 주고, 간호사는 호박 같다는 내용이 어디에서 유래되었건 명확하게 말이 되지 않아서 생각할수록 웃기다.
입을 모아 열심히 부르던 이 노래가 자아내는 웃음은 근래에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웃음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말이 안 되는 세상에서 부단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속 빈 웃음’ 말이다. ‘허무개그’는 이미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아직 유효하다. 아직도 열심히 허무한 웃음을 만들고잠시나마 정적과 함께 쉬어간다. 사실 그런 친구들은 주변에 아직 꽤 많다.
테이크아웃드로잉 레지던스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는 중심에 공터라는 말이 놓여있다. 우리에게 기회와 소유가 비워진 이 장소를 어릴 적 뛰어놀던 공터와 이어 붙여보았다. 공터라는 말은 범위가 아주 넓은데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바탕이라고 좁혀서 놓았다. 지금의 상황을 참여작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씹고 뱉어내길 바랐다.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는 레지던스 과정을 거쳐 뱉어낸 작업들을 한남동에서 전시하고, 작업의 내용을 더욱 가깝게 경험하고 볼 수 있는 작가별 프로그램이 한남동과 이태원에서 산발적 열린다. 또 레지던스의 과정을 기록하여 한남동 1층 벽면에 업데이트하는 기획자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참여 작가들은 이번 기획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다. 잦은 만남으로 기획에 대해 설명을 했으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아마도 기획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에 남아있던 작가들을 모아보고 생각해보니 그들이 만들 풍경이 굉장히 살풍경이 될 것으로는 기대감이 먼저 앞섰다. 그래서 기획의 방향은 참여 작가들이 만들어 가는 것으로 고백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뚜렷해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기대했다. 고무줄놀이는 공동의 노랫말과 개별의 움직임이 뒤섞이는 탄력적인 놀이이다. 이 놀이는 서로 고무줄에 연결해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을 배회하며 이어진다. 레지던스에서 작가들이 작업에 몰입하며 만들어가는 것을 고무줄놀이라고 생각하고, 놀이의 노랫말이 울리는 장소가 전시이자 작가 개별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김익현은 스스로 스마트폰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익숙한 카메라 장비를 대신하여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특히, 구글에서 서비스하는 360도 사진 기록애플리케이션 스트리트뷰 서비스에 눈이 반짝였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설명하기 어려운 장소를 가볍게 스캔, 압축하여 전달하거나, 직접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를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낸다. 모두 어떤 장소를 압축하고 재생산하여 인간의 경험을 넓히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시에서 발표하는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는 이 기술이 세계의 장소들을 압축하고 접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오류들을 포착한다. 그는 미끄러지고 휘어 감긴 이미지에서 견고하게 이어 붙는 세계의 틈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그 틈들이 모두 이어 붙어 미래에는 모두가 연결된다고 하니 김익현은 미래에 스마트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될 수 없기에 반대로 아날로그 방식의 일회용 카메라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도 관심을 둔다. 그가 준비한 프로그램 <이승의 다리를 건너서>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주고 사직단을 촬영한다. 근래에 사직단은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과거의 환영을 현재에 복원하는 이 사업의 목적성이 흥미롭다고 했다. 사직단은 조선 시대에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어 보이는 사직단 원형 복원이 자본이 물신화된 세계에서 어떤 마찰을 만들어 낼까. 그는 늦은 밤 사직단에서 사람들에게 귀신을 촬영하도록 제안한다. 아날로그 일회용 카메라의 저급한 기술은 아마도 검은 어둠만을 담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업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에서도 그러했듯이 과거의 유효했던 장소가 현재와 접합되는 과정 이면의 얄팍함을 관찰하고 드러내는 시도로 보인다.

   김범종은 얼마 없는 여가 시간을 당구장에서 보내는 때가 많다. 특히 당구장에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분위기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샷을 치기 위해서 집중하는 사람의 모습이나 단단한 당구대 위에 몸을 길게 눕힌 사람, 실패를 아쉬워하며 소리를 지르고 탄식을 흘리는 사람 등등. 당구장 안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 뭉개며 지워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주로 연필이나 펜을 사용한 드로잉, 회화 작업을 주로 하는 김범종의 작업은 늘 설명하기가 어렵다. 본인도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항상 궁금해 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그에게 작업하는 동기나 이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호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모호한 그림 안에는 의미의 개연성이 부재한 이미지가 마치 표본처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어떤 사건들이나 이야기를 그린다기보다는 특정 부분의 질감을 채집하듯이 그리는데 이번 레지던스에서는 당구장에서의 경험에 집중했다.
 <웃음소리>연작은 제목 그대로 당구장 안 사람들의 웃음소리의 질감을 묘사했다. 딱딱한 당구대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당구공의 궤적이 뒤엉켜있는 듯하다. 이 드로잉 시리즈는 무엇인가 탈구된 채 즐거움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이미지로 발췌한 것이다. 동그라미들 안에는 일그러지고 뭉개지는 형상들이 세포가 분열하듯이 복제되고 있다. <번쩍이는 표면>과 <당구>드로잉 연작에서는 당구대와 공의 매끈한 표면 질감을 묘사하면서 그 형태를 휘거나 구기면서 변형한다. 그는 단단하고 딱딱한 당구대와 공의 표면 안에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흐물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구겨지며 반사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나>는 캔버스에 형형색색의 스프레이 안료가 서로 뒤엉켜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과 나라고 불리는 아저씨는 당구장에서 자주 보이는 사람들의 부류를 말한다. 이들은 이 장소를 점령하듯이 배회한다. 이들은 이 장소에 대해 무례하다. 당구장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댄서처럼 춤을 추던 시간은 이내 곧 사라지고 지나가 버린다. 김범종은 이 사라진, 혹은 사그라든 시간들을 화면위에 흩뿌려 놓는다. 당구장에 있던 사람들의 옷, 얼굴, 피부의 색들을 임의로 골라 색을 선택했다. 화면 안에는 인스턴트적인 색의 충렁거림 이외에 무엇도 발견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다가 어느 순간 비워지는 당구장이 그에게 공허롭고 헛헛하게만 다가오는게 아닐까.
김범종은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그리는 것들은 일종의 왜곡된 상이라고 한다. 자신의 필터를 통해 왜곡된 사건과 질감들은 스스로의 태도와 정서를 들어낸다. 김범종의 프로그램은 논리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그림 그리기의 방식을 길게 늘어뜨리는 <길고 잘못된 것>이라는 이름의 극적인 퍼포먼스이다. 누군가에게 혼이 날 때 경직되고 움츠러들고 머뭇거렸던 본인의 경험의 부분과 질감을 그림을 통해 왜곡하고 한번더 행위로 만들어낸다. 결국 왜곡과 왜곡의 과정을 거친 후 남게되는 행위는 그와 세계가 분리되어 자꾸만 어긋나고 떨어져나가는 파편들일 것이다.

   심혜린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대부분 스마트기기와 SNS를 통해서 경험한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을 항상 가깝게 지니며 틈이 나면 타임라인을 흝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손안에 화면을 쓸어내리며 수많은 사건을 넘기다가 문득 실제의 세계가 나풀나풀 거리는 종잇장처럼 다가왔다.
어떤 경험들 이후에 남는 잔상들을 병렬적으로 쌓아가는 회화작업을 해온 그의 이미지는 대부분 미완적이거나 형상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머문다. 이는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하듯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담아가는 그리기의 방식 때문이다. 이번 레지던스에서는 세 점의 회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기우뚱하게 흐트러지는 사람>은 제목에서처럼 어떤 사람의 흐트러진 자세를 담았다. 우연히 스마트폰에 담긴 의도를 알 수 없이 애매하게 포착된 몸 이미지를 담고 싶었다 한다. 심혜린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다가 형상화 되기 전에 다른 이미지로 옮겨간다. 기억이나 정서의 조각들이 불쑥 튀어 오르는 방향으로 붓을 옮기고 화면을 만들어 가며 전체를 구성한다. <가깝고 낯선 것 사이에서 버둥거리는>은 해수욕장을 다녀온 경험을 불러낸다. 휴가철 바닷가는 거대한 풀장처럼 안전선 안에서 사람들이 바둥바둥 파도를 즐긴다. 그 사이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의와 타의 사이에서 부유하는 덩어리들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이 마치 물 위의 떠다니는 이물질처럼 느꼈다고 한다. <끼워진 뼈와 살>은 어떤 외압에 의해 ‘홱’하고 구겨진 몸의 이미지다. 균형 잡힌 외형을 잃고 낱개로 발라진 뼈와 살이 엉뚱하게 들러붙는 분절 감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처럼 즉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따라가며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언뜻 개연성 없이 부딪히고 있는 판판한 표면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이미지가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공간감은 굉장히 기묘하다. 마치 하루 동안의 경험들이 잠이 들기 직전 분절되며 한꺼번에 몰아오듯이 추상적이고 압축적인 깊이 감을 경험하게 한다.
SNS의 타임라인의 속도감은 어떤 생각이 머물고 곱씹기 어렵게 한다. 빠른 속도감 때문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이 정보들이 가슴에 얹힌 듯이 소화되지 않아서 어떤 분열적인 상태를 체험할 때가 많다. 심혜린의 프로그램 <낭독회: 몸을 바꾸는 낮과 밤>은 이렇게 체한 듯한 상태를 소화하는 행위를 구성한다. 해가 뜬 낮 동안 정보를 차단하고 떠오르는 말들을 적는다. 밤이 되면 이 말들을 낭독한다. 하루 동안 글을 쓰는 행위의 몸에서 말하는 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 본인에게 체적된 언어들을 꺼내어 밖으로 흘려보내고 싶다 했다.

   엄유정은 주로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옮기는 회화,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특히,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 그 장소를 관찰하고 그리는 일에 몰입한다. 레지던스에 입주하며 공터라는 말을 듣고 나서 과거에 여행했던 미국 중부지역의 데스밸리의 사진을 꺼내왔다. 데스밸리는 척박한 환경의 넓은 황무지인데, 이곳의 흙, 색 질감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퇴적된 시간을 느꼈다고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리는 즐거움을 좋아하는 그는 마치 머리카락을 땋아 올리듯이 데스밸리의 질감을 화면에 역어 놓았다. <데스벨리>연작에서 그려낸 황무지는 척박하기보다 되려 아이스크림처럼 쫀득하게 느껴진다. 특정한 장소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기보다 스스로 감응으로 휘감아 그리는 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마치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은 풍경은 현실감각을 휘발시키고 어떤 낭만적인 정취를 더욱 부각한다.
엄유정의 프로그램<상영회: 어디에도 없이, 색, 풍경, 사람들>은 느릿느릿 만들어 본 드로잉 영상과 함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상영하고 본인이 감응을 느끼는 정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제작자이자 활동가로 또, 디자이너라고 불릴 수 있는 최빛나를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직업군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청개구리 제작소를 운영하며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연산적 구식화와 주술적 노래>라는 문장을 제시했다. 컴퓨터프로그램 기초가 되는 코딩언어와 생활언어의 차이점과 틈에 대한 흥미로움을 코딩을 통한 직조의 방식을 통해 실험하고 관찰한다. 연산적 구식화라는 말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언어를 생활언어로 치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변환된 언어를 다시 음악적으로 변환하여 만든 노래를 주술적 노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는 어떤 구문오류들이 발생한다. 이는 이진수의 딱딱한 컴퓨터프로그램언어가 암묵지적인 언어로 가득한 생활 위로 꺼내어지기 때문이다.

   최빛나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들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가 열리기 전 <연산적 구식화와 주술적 노래>라는 참여 프로그램을 열어 참여자들과 실험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공동의 직조 물을 만드는 도구를 통해서 뜨개 직조 물을 만들었다. 이 직조 물을 만드는 방식을 코딩언어로 기록하고 음악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최빛나는 이 프로그램의 과정과 결과물을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놓는다.


전시는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의 계단과 층간 사이에 자리 잡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카페의 손님과 복잡한 콘텐츠로 가득한 장소이다. 그래서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가 놓이기에 물리적인 어려움과 정서적인 간격이 동시에 존재한다. 통로와 층간, 창고는 그 자체로 움직이거나 비어있다. 자조 섞인 웃음으로 척박함을 우회하듯이 여기에서 전시도 우회한다. 슬라이스 쳐진 떠다니는 오이가 입혀진 가상의 입구는 까페 공간과 폐쇄적인 단절감을 연출하길 바란다. 새로운 입구에 진입하고 통로를 머무는 장소로 바꾸며 작업이 놓이기 부적절한 조건 위를 배회하는 전략이다. 전시는 지하에서부터 옥상까지 연결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작가들의 작업이 충돌하며 펼쳐진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작업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의 노랫말이 그렇듯, 의미와 가치로 좁혀지지 않는 개별 성들이 현재의 부재한 조건들 위에서 묶이는 기이함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하며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더듬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 하나 편하게 웃음 짓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속이 빈 웃음은 지나가면 속이 쓰리다. 그런 쓰린 잔상을 웃음 뒤에 짙게 내려 앉히며 ‘쿨’하게 세상을 씹어 뱉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래에 대한 거리감은 코앞까지 좁혀진 듯 우리를 눈 뜬 장님으로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우리가 서 있는 땅은 대부분이 누구의 소유이고 심지어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자릿세를 내야 하는 현실이다. 나는 주차장에서 요금을 계산할 때마다 매번 헛웃음을 짓곤 하다. 실제로 우리가 설 땅은 아주 확실하게 희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땅 위를 쉼 없이 배회하며 떠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아무도 밝은 미래를 말할 수 없으며, 그런 것 따윈 없을 거라고 읊조리며 그저 둥둥 떠다니는 산 귀신이 되어가는 것일까. ‘참. 그럴 수밖에’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끝이 없이 주변으로 울려 퍼진다. 이 자조 섞인 웃음에는 절대적으로 자기 부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꿔 말해 살기 위한 현실 부정의 노력이라고 적어 보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일까? 그렇다면 이 웃음에 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웃음 뒤에서 혹은 아래에서부터 현실의 지난함이 담기고 있고, 그럼으로써 이 노력이 현실과 자아를 접합하는 결집의 순간이라는 것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 치 앞을 밀고 가는 ‘부유하는 기예’라는 것을 말이다.

 

기획/글_김윤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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